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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답게 생명이니 생명답게

한살림 소식지 578호 중 [한살림 하는 사람들]

 

사람은 사람답게
생명이니 생명답게

 

파주 천지보은공동체 김춘권·반미희 토종닭 생산자

 

파주 천지보은공동체 김춘권·반미희 토종닭 생산자

 

이제 막 만났는데도 께복젱이 시절부터 함께 해왔던 것처럼 익숙한 이가 있다. 그가 살아온 삶이나 지닌 생각이 내가 알던 이와 꼭 닮아있기에 느껴지는 편안함, 익숙함이리라. 김춘권 생산자도 그러했다. 2015년부터 한살림과 함께 한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30년 가까이 한살림에서 유기농사를 지어온 초창기 생산자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철모르는 짓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토종닭을, 그것도 항생제 없이 키우기로 한 모험 섞인 시도, 내 믿는 바대로 생명을 키우기 위해 일단 시작했지만 판로가 없어 결국 헐값에 넘겨야 했던 아쉬움, 갑작스레 찾아온 병해로 쓰러진 수천 생명을 눈물 머금고 하나하나 처리하면서도 금방 다시 일어나 새 병아리를 들여오는 의지.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 한살림 생산자라면 두어 번쯤 겪었을 법한 경험담들이었다.

“그토록 닮은 당신, 왜 이제야 왔나요.”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하리라.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살았는걸요. 그리고 앞으로 더 오래오래 함께하면 되지요.” 맞다. 잘 왔다. 우리 함께 살자. 오래도록.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

 

 

이달의 살림 물품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만드는
생명력이 그대로
한살림 토종닭

 

닭의 본성을 위해 계사 바닥에서 40cm 높이에 마련해준 횟대

 

모든 존재하는 것은 냄새를 지닌다. 그것은 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체취일 수도, 함께 하는 존재나 사는 환경, 먹은 음식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덧씌워진 것일 수도 있다. 본연의 것이든, 주어진 것이든 냄새는 이미 그 존재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고유의 것이고, 그러기에 냄새는 그 존재의 지금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쇳말이 된다.
킁킁. 계사와 거리가 한 5m나 남았을 때. 시골 정취와 잘 어울리는 닭똥냄새가 코끝에 와 닿았다. 결코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냄새이지만 그렇다고 코를 싸맬 정도로 지독하지는 않다. ‘이 거리에 이 정도 냄새면 많아야 기백마리 정도일까.’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열린 문으로 들이민 고개 뒤끝으로 찌릿하고 전기가 흘렀다. 눈으로만 대충 훑어도 수천 마리. 쏟아져 내린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많은 닭이 그곳에 있었다. 이리저리 다니며 먹이와 물을 먹고, 두어 번 날갯짓으로 40cm 높이의 횟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빠르게 노니는 것들은, 좁은 곳에 웅크린 채 풍기는 냄새로만 자신이 거기 있음을 증명하는 여느 곳의 닭과 달리 ‘내가 여기 있노라’며 지닌바 생기를 강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닭이 이렇게 많은 데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지요? 깔집(짚, 톱밥)이 깔린데다 창문도 많고, 햇볕도 잘 들어서 그래요.” 김춘권 생산자가 자랑 섞인 설명을 슬쩍 건넨다. 병아리를 새로 들이기 전 계사 바닥에 왕겨를 두툼하게 까는데 닭똥이 여기에 뒤섞이면 발효가 일어나 냄새가 적게 난다. 약간 스며 나온 냄새를 밖으로 데려가는 바람과 왕겨 깔집이 축축하지 않게 바싹 말려주는 햇볕까지. 제 똥이라고 하지만 냄새가 적으면 좋은 것은 사람이나 닭이나 마찬가지이리라. 환기와 일조량이 보장되니 호흡기 질병이 여느 계사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먹는 것은 더욱 남다르다. 사료 만드는 것을 자세히 보고 있자니 발효한 홍삼박이 꽤나 들어간다. 개성과 가까운 파주에는 유독 홍삼 공장이 많은데 그중 잔류농약검사에 합격한 홍삼박만을 사료에 섞는다고 한다. 달이고 난 찌꺼기라지만 홍삼의 영양분에 함께 섞는 유용미생물(EM)까지 더해지니 닭으로서는 분에 넘치는 호사다. 물 또한 특별하다. 꿀벌이 만든 천연항생제 프로폴리스를 희석한 물을 준다.
사는 곳과 먹는 것이 다르니 체질도 다르다. 면역력이 양껏 높아져서인지 웬만한 질병은 훌훌 털고 일어난다. 항생제로 병을 예방하지 않아도 스스로 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일반 닭보다 면역력이 강하다고 해도 신종 질병에는 취약하죠. 항생제를 쓰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닭의 자연치유력을 믿고 버텨요. 피해가 완전히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게 옳은 방향이니까 후회는 없어요.”

 

계사에 온 지 일주일 된 병아리가 모이를 먹고 있다

 
더 귀하디 귀해질 토종닭

김춘권 생산자가 기르는 것은 일반 육계가 아닌 토종닭이다. 육계에 비해 살이 단단하고 쫄깃해 씹는 맛이 있고, 올레인산 함량이 높아 삼계탕, 백숙 등을 끓였을 때 깊은 감칠맛이 난다. “토종닭이 질기다는 것은 예전에 시장에서 늙은 산란계를 토종닭이라고 속여 파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오해에요. 제대로 된 토종닭을 먹어본 사람들은 절대로 질기다고 안 해요. 쫄깃하다고 하면 모를까.”
토종이라는 말이 붙어 있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키우던 우리나라 고유의 종자는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사라진 토종닭의 특성을 연구하고 생산성 측면까지 고려해 1990년대 복원한 것이다. 다시 말해 ‘토종’에는 ‘오래전부터 그대로 내려왔다’는 뜻이 아닌 ‘우리 입맛에 맞게 복원하고 육성했다’는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시중에 나오는 토종닭 중 한국토종닭 협회에서 인정한 품종은 ㈜한협의 ‘한협3호’와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개발한 ‘우리맛닭’ 2종뿐. 이중 한살림에서 만날 수 있는 한협3호는 비교적 성질이 온순하고 고기맛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토종닭협회 추정에 따르면 국내산 육계 중 토종닭이 차지하는 비중은 7~8%에 불과하다. 우리 입맛에 맞아 소비자가 많이 찾는데도 시중 육계가 토종닭으로 대체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살림에 백숙용으로 공급되는 1.2kg 크기의 토종닭을 키우기 위해서는 보통 60~70일이 걸리는데 육계의 경우 그 절반도 필요치 않다. 사육기간과 그에 따른 먹이, 시설 등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데 가격 차이는 크지 않으니 토종닭을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항생제 없이 토종닭을 키우는 농가는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는다.
문제는 이 토종닭 시장마저도 거대자본이 점차 장악 중이라는 것. “토종닭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니 몇 년 전부터는 몇몇 대기업들도 뛰어들었어요. 부화장들도 대기업에 병아리를 먼저 넘기고 남은 물량을 일반 농가에 주는데 전체적으로 부족하면 후순위로 밀린 농가들만 죽어나죠.” 대기업은 계약 농가에 월령에 맞는 항생제 사용 매뉴얼을 주고, 그대로 키운 닭만 납품시킨다. 지금도 많지 않은 무항생제 토종닭, 먹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때가 머지않았다.
김춘권 생산자의 토종닭 농장을 찾기 며칠 전, 파주 지역 한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다급히 수화기를 들었었다. “AI 소식이 있던데 괜찮은가요?” 닭은 괜찮은지, 외부인이 농장에 들어가도 괜찮은지, 같은 지역인데 매몰 위험은 없는지 등 많은 이야기가 담긴 질문에, 그의 대답이 수화기 너머로 툭 던져졌다.  “괜찮아요. 그냥 오세요.” AI의 감염경로가 확실하고,  파주 지역의 방역이 잘 되어 있는 데다, 면역력을 키운 그의 닭이기에 걱정할 것 없다는 설명이 그 한 마디에 담겨 있었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날이 오리라. “무항생제 토종닭 아직도 괜찮은가요?” 새롭게 나오는 질병을 닭이 지닌 면역력만으로 이겨내기가 쉽지 않고, 노력만큼의 대가가 수월히 주어지지 않으며, 토종닭 시장이 몇몇 대기업에 점차 종속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의 질문에 그가 계속 이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괜찮아요. 그냥 드세요. 한살림이 있으니 끄떡없습니다.”

 

가공을 거친 닭은 급랭해 보관한다

 

글·사진 김현준·윤연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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