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굴곡진 인생 한살림과 함께라 다행입니다

김식자·최상림 고성 논두렁공동체 생산자

김식자·최상림 생산자는 각각의 배우자와 귀농한 지 1~2년째인 신규 생산자입니다.

고성 논두렁공동체에서 자연 그대로의 방식으로 쥬키니호박, 애호박을 재배하고 좌충우돌하며 시골살이하고 있습니다.

 

 

점과 점을 곧게 이으면 직선이 된다. 직선은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질주와 경쟁만이 남은 선이다.
자연에도, 농사에도 직선이 없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도 바람과 얼크러져 몸을 떨며 내려오며, 제아무리 방향을 정하고 쟁기질해도 고랑은 이리저리 굽을 수 밖에 없다.

삶 또한 어느 순간과 다음 순간을 잇는다는 점에서 선이다.
많은 이들이 방향과 속도가 적확한 직선의 삶을 동경하지만, 우리네 대부분은 저마다의 이유로 구불거리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떠밀려 흐트러진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자신만의 곡선을 만들어낼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삶의 점과 점을 제 방식대로 잇기로 결정한 이들이 있다.
영어학원 원장에서 생산자로, 전통매듭 전문가에서 한살림 활동가 그리고 다시 농부로. 어제의 관성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한살림의 젊은 귀농인, 최상림·김식자 생산자다.

 


 

그, 그녀, 새내기 귀농인
그가 농사에 뛰어든 것은 2016년 5월,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고성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날 때부터 농부의 아들인 그가 농사를 결심한 것을 과연 귀농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모가 일구던 땅과 시설, 경험까지 물려받은 그를 귀농인의 범주로 묶는 것이 혹여 다른 귀농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은 아닐까. 하지만 가만가만 내놓는 그의 농사 경험담과 고민을 듣다 보면 그 세대 귀농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자연은 공평하다. 땅은 자신을 일구는 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를 상관치 않고, 작물도 자기가 받은 만큼의 결과물만을 내놓는다. 10년 넘게 운영하던 영어학원을 단호히 정리하고 내려온 그, 손이 서툴고 고된 농사일에 저녁 여덟시만 되면 뻗어버리는 최상림 생산자는 누가 봐도 한살림의 초보 생산자다.

전형적인 귀농인의 길을 걸어온 그녀는 본래 매듭을 엮는 이였다.
20년간 배우고 가르치던 전통매듭을 내려놓고 한살림경남의 조직활동가로 들어간 데는 한살림 활동이 귀농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셈속도 적잖이 작용했다. 그리고 그 계산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귀농 귀촌 노래를 몇 년째 부르고, 정착할 곳을 찾아 여러 마을을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그녀의 시골살이 문은 한살림을 통해 활짝 열렸다. 공동체의 선배 생산자들이 오가며 하는 묵직한 조언에 아직 가슴이
뜨끔뜨끔하지만, 자신과 땅 그리고 작물이 줄줄이 엮어낸 소출이 무엇보다 기분 좋은 김식자 생산자도 한살림의 새내기 생산자다.

 

한살림, 공동체 덕분입니다
“귀농의 어려운 점은 지을 농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물과 판로가 정해진 저는 운이 좋죠.” 최상림 생산자가 본업을 접고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우동완 논두렁공동체 대표 덕분이었다.
고성에서만 가능한 겨울 쥬키니호박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떠냐는 우 대표의 제안에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농사를 시작했다.

그와 김식자 생산자는 각각 220평 너비의 하우스 세 동에서 농사짓고 있다.
두 동에서 쥬키니호박을, 나머지 한 동에서 애호박을 재배한다. 여타 작물에 비해 쉽다고는 하지만 초보 농부가, 그것도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든든한 것은 작물을 안정적으로 낼 곳이 있다는 점이다.
같은 크기의 하우스에서 관행 농사의 절반 남짓을 겨우 수확하는 농사일지라도, 서툰 솜씨로 재배한 호박들을 두 말 않고 받아주는 한살림 소비자가 있어 다행이다 싶다.

김식자 생산자는 아예 맨땅에서 시작했다.
귀농을 꿈꾸며 마음에 드는 땅이 나올 때마다 부동산을 찾았지만 “타지 사람을 어떻게 믿고 땅을 빌려주느냐”는 이야기만 수차례 들었다.
그가 있는 한살림 활동실에 들른 우 대표가 지나가는 말로 “우리 지역에 하우스가 나왔는데 젊은 생산자가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귀가 번쩍 뜨였다.
며칠을 고민하다 주소가 적힌 메모지만 들고 우 대표를 찾았다.
“무조건 열심히 할 테니 일단 빌려달라”고 하며 의지를 불태운 그는 결국 논두렁공동체 회원이 되었다.

난생 처음 가본 고성에서 귀농을 선택한 그가 믿는 연고는 한살림뿐이다.
다행인 것은 그 연고가 너무나 탄탄하다는 점이다. “논두렁공동체는 밖에서 볼 때보다 훨씬 더 똘똘 뭉쳐있어요. 공동체 단위로 ‘더불어’ 하는 일이 많아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공동체 덕분에 마을 분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이야기 내내 귀농하면서의 고생과 농사일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귀농을 하니 좋으냐”는 질문에는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은 처음이라 돈이 거의 안돼요. 지금 통장에 3만7,000원 있어요. 그래도 좋아요. 학원 할 때보다 마음이 편하거든요.”

최상림 생산자의 말처럼 귀농이 바로 수익과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두 사람 모두 배우자가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으리라. 그럼에도 지갑의 두툼함보다 마음의 풍성함을 선택한 이들은 ‘길은 열려있으니 선택하라’고 권했다.

“한살림 활동가 중 생산자를 꿈꾸며 귀농한 분이 많아요. 직접 와보니 왜 이제야 왔나 생각이 들어요.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요.”
두 사람 모두 남의 땅을 빌려 호박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 짓는 농사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란 법도 없다. 그래도 괜찮다. 이미 한 번 자신만의 곡선을 택한 이들은 그 유연함으로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을테니.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

 


 

자연 그대로 자란 한살림 애호박, 쥬키니호박

 

대형마트 농산물코너를 지나다 보면 묘한 불편이 느껴져 자리를 급히 뜨고 싶을 때가 있다.
이질감의 정체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 너무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나란히 누워있는 농산물이다.

애호박은 동일한 규격과 형태로 판매되는 대표적인 열매채소다.
공산품 같은 애호박의 비결은 포장에 있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호박은 비닐 재질로 딱 맞게 포장되어 나온다.
한살림을 제외하면 생협 대부분에서 판매되는 애호박도 다르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애호박은 비닐 포장되는 것이 아니라 포장에 맞춰 자란다.
애호박은 꽃이 질 때쯤 어린 열매에 ‘인큐베이터’라 불리는 비닐을 씌워 재배한다.
인큐베이터를 씌운 애호박은 일정 크기 이상 자라지 않고 당연히 휘지도 않아 우리가 생각하는 크기와 모양 그대로의 상품이 된다.

인큐베이터에 보호되고 있으니 재배와 수확할 때 상처가 나지 않고 벌레 피해도 적어 수확량이 많다.
농약을 치더라도 열매 자체에는 닿지 않으니 친환경 애호박을 생산하는 농가에서 더욱 애용한다.
하지만 생명을 틀에 맞춰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놓고 키우는 것이 진짜 친환경이라 할 수 있을까.

“한살림을 제외하면 우리가 먹는 애호박의 95% 이상이 인큐베이터에서 재배한다고 보면 돼요.
한살림 애호박은 큼직한 봉지에 포장해 나가는데 똑바로 된 모양은 별로 없죠. 그래도 맛은 훨씬 좋아요.”

쥬키니호박은 어떨까.
화석연료를 이용한 가온재배가 보편화되며 애호박은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는 채소가 되었다.
그 덕에 애호박과 쓰임새는 비슷하지만 선호도는 낮은 쥬키니호박은 대부분 식당이나 급식업체 등 대형 소비처에서 이용되고 있다.

소비량이 큰 곳에 판매하니 되도록 큰 쥬키니호박을 만들기 위해 호르몬제를 사용한다.
생명 본연의 박자대로 자라지 못했으니 자연히 맛도, 안전성도 떨어진다.

한살림은 가온재배를 정책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지면 수정이 어려운 애호박은 한살림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고성지역의 쥬키니호박이 한살림에서 유일하게 겨울에 공급되는 열매채소다.

고성에서는 하우스에서 ‘수막’을 이용해 쥬키니호박을 재배한다.
두 겹 비닐로 만든 하우스의 바깥쪽 비닐과 안쪽 비닐 사이에 밤새 지하수를 뿌리면 수막이 만들어지고 하우스 안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여름보다는 생장이 늦지만 추위에 강한 쥬키니호박은 수막재배로 키울 수 있다.
가정에서 주로 소비하니 크기도 애호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명력이 그대로 담겼으니 맛은 말할 것도 없다.